일본인이 일제강점기 조선 배경으로 무당 오컬트 만화를 그린다? 뿌슝 빠슝!
미안합니다 관심 모으려고 어그로좀 끌었습니다.
질 나쁜 농담같은 조합인데 진짜 존재하는 물건이다.
아무튼 이 조합의 무시무시함으로 인해 한국 웹에서 꽤 화제가 됐었던 터라 내친김에 읽어보았다.
요약 감상 : 상당히 일본인스럽긴 한데 기본적 자료조사는 잘 되어있는 편이다. 그런데 역시나 일본인스럽다.
작가가 한국 영화 팬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만화의 배경 컷에 박찬욱 복수 3부작이나 마녀같은 한국영화 제목들이 수시로 출몰한다. 영화로 한국 배웠구나... 박찬욱 올드보이 제목이 자주 보이는데 그 덕에 표지에도 나오는 무당이 들고 있는 장도리머리가 강점기 배경임에도 너무나도 현대스러운 디자인인 이유(80년대만 하더라도 훨씬 더 투박한 형태를 하고 있다)를 알게 되었다.
허구헌날 일본제국은 제국주의 식민통치 국가가 아니었다느니 그때는 조선도 일본이랑 한편이었는데 이쪽을 배신하고 은혜도 모른다느니 하는 적극적 역사왜곡형 혹은 머리꽃밭형 개소리만 접하다가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배했음 ㅇㅇ' 하고 건조하게 인정하고 들어가는 물건은 처음봐서 신선했다.
건조하게 인정한다는건 보통 우리는 제국이다! 짱 쎄다! 식민지를 갖고있다! 하는 땅따먹기에 대한 자부심 넘치는 전통적 제국주의 시각이나 제국주의라뇨? 어디까지나 세계화 산업화입니다! 우리는 그 뭐냐... 제국주의여도 착한 제국주의라구욧 하는 개수작적 회피형 제국주의 관점이 아니라 '아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배했죠 ㅇㅇ'하고 사실은 인정하고 들어가는 부분을 말한다.
사실 식민지배 인정 뉘앙스같은건 사실 출판사쪽에서 번역하면서 매만졌을 가능성도 있고 하니 차치해두더라도 보통의 일제배경 일본만화나 한국 대체역사물 웹소 같은데에서 흔히 보이는 우리도 제국이 돼서 세계정복하고 식민지 잔뜩 둘거임! 아무도 우리를 욕하지 못함! 하는 땅따먹기 부심 정서는 확실하게 아니긴 하다.
하지만? 까만옷 입고 악귀를 내려받아 무반주 땐스로 저주를 쏘는 무녀라니 너무나도 일본인의 갬성과 미감이라 할수밖에 없다.
뭐 근데 이정도는 외국인의 재해석 영역이라고 본다. 재밌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고 잘한다 더해봐라 싶기도 하고.
올드보이 영향 에지간히 받았구나 싶기도 하고 실제 무당이 굿하면서 트랜스 상태에 들어가기 위해서 혹은 트랜스 상태에서 제자리 또는 칼 위에서 펄쩍펄쩍 뛰는걸 외국인은 서전트 점프, 드롭킥 등으로 재해석하는구나 싶어서 솔직히 흥미롭다.
하지만 다시 한번 짚어보건대 허벅지까지 보이는 미소녀의 하이킥이라는건 확실히 일본인스럽군요.
가시내야 속곳 바지 치마중에 하나라도 챙겨입어라 감기들겠구로
그런데 일본인의 감성과 미감과는 별개로 한국의 무속에 대한 기본 조사는 또 충실하게 한 편이다.
문헌조사를 충실하게 해서 참조문헌이 주루룩 적혀있고 작내에서도 제법 오...? 일본인인데 한국 무속에 대해서 성실하게 조사했네? 싶은 부분이 꽤 존재한다.
강신무(신내림받음)와 세습무(대대로 무당)의 차이와 지역적 분포에 대한 사항이라거나 굿거리의 순서나 공수와 무가에 대한 조사라던가는 사실 한국사람도 무속에 대해서 민속학적인 관심이 없으면 보통 잘 모르는 사항인데 세세히 설명하고 있다거나.
(개인적으로는 학창시절에 무당이랑 기생에 꽂혀서 도서관에서 책을 찾아보고 알아낸 사항이다.)
그래서 코 쓱 문지르며 쯔아식... 자료조사 쫌 열심히 했다? 하는 순간 외국인의 순수한 고증오류가 쓰나미처럼 독자를 덮쳐온다.
이 짤에 응축된 고증 오류가 하나둘이 아니어서 한국인 독자에게 핵웃음을 선사한다.
1.탈놀이꾼... 그러니까 탈춤꾼이라면 광대인데 보통 사당패에 소속되어 떠돌기 때문에 처자식이란게 있기 힘들다.
2.천민인 광대가...도포에 갓...? (이건 아마 하회탈중에서 양반탈의 착장을 보고 그걸 그대로 채택해서 난 오류같다.)
3.상투를 틀고 그 위에 갓을 고정하는게 아니라 갓을 쓰고 그 아래 똥머리를 했다.
4.탈놀이... 아무튼 탈춤이라기엔 조선의 탈춤으로 대표되는 가면극은 1인극이나 마임이 아니라 다인이 등장하는 연극 형식에 가깝고 그래서 사당패가 필요하기 때문에 1인은 할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사당패에 소속되곤 한다. 하필 또 작중에서 사용된게 하회탈들이어서... 아무래도 일본의 노오와 개념적 혼동이 일어난 듯 하다.
근데 뭐 이런 세세한 고증은 진짜 외국인이라 몰라서 그런거 티가 확 나서 그냥 웃기기만 하고 한국인 입장에서 기분이 상한다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다거나 하진 않다.
정작 한국인으로서 어 아니야 그거 아니야 진짜 아니야 하게 되는 오류는 오히려 다른데에 있다.
작품 중심 소재가 무당이다보니 '신과 인간을 잇고 그 굿거리 사이에 인간에게 맺혀있던 감정을 풀어내는 사제'에 가깝다는건 작가가 캐치를 했는데
핵심 개념인 한에 대한 해석이 삐끗했다.
질투 아닙니다. 증오 아닙니다. 광기 진짜 아닙니다. 한이란건 말이다 삶과 정신, 신체에 스며들어 새겨진 슬픔과 응어리와 같은... 아무튼 광기 아니라 이거다!!!
쨌거나 작내에서 한을 사실상 '극에 달한 온갖 감정이 응축되어 생겨나는 광기'로 해석하고 있다.
이게 외국인의 착각인지 아니면 한이라는 감정을 이해는 했지만 일본만화스럽게 그걸 각색하는 과정에서 과장하고 온갖 의미부여를 해서 노브레이크로 엑셀밟은건지 꽤 헷갈렸다.
일단 문헌중에 한 관련 도서가 한 권 존재하는데다, 작가가 한국영화 좋아하고 그중에서도 한국 공포영화 많이 봤다는 얘기를 듣고 느낌적인 느낌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한국 공포영화로 한을 배웠으면 광기라고 잘못 학습할수도 있지... 제대로 이해했어도 광기라고 대충 뭉갤수도 있지... 응..... 영화로 배웠으면 그럴만 해...
아니 그래도 한이 광기는 아니지(벌떡) 작가양반 이리 와서 좀 앉아보쇼.
그거 외에 약간 걸리는 오류는
작가가 오니와 도깨비를 혼동한데다 (의도적으로 동치했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도깨비를 악귀라고 이해했는지 위의 한=광기 개념과 엮은 뒤 크툴루를 끼얹은 부분이다. 도깨비가 주인공 무당의 광기가 불러낸 악귀이자 또다른 자신이라고 설정했다.
명백한 오류긴 하지만 창작의 관점에서 충분히 각색으로 봐 줄 수 있는 부분이고 사실 오니랑 도깨비를 혼동하는건 한국인들도 오래전부터 흔하게 해온 일이라 딱히 노여울 일은 없다.
다만 민속학 그뭔씹 이야기를 좀 하자면 도깨비는 토지신 개념에 가깝고 남성체만 존재 한다. 이건 백정에 대한 편견과 마찬가지로 여진혈통 혹은 서양 혈통의 외국인 남성에 대한 편견과 타자화가 민속학적으로 굳어진 것이다. 이러한 남성형태+금은보화설화+뿔을 달고 있음+장난 이라는 공통점으로 일본 오니랑 동일시되거나 동치번역된 탓에 한국인들도 도깨비나 민속학에 대한 관심이 없다면 잘 모르고 혼동하곤 하는 사항이다. 덧붙여 귀면와등의 시각자료로 접했다면 더더욱이나 오니와 착각하기 쉽고... 후...... 아무튼 그뭔씹 도깨비 이야기는 그만 하자. 이것도 참고문헌중에 관련 도서가 한 권 존재하는데다 2222
다음 에피소드는 제주도-그중에서도 이어도 전설이라는걸 암시하면서 대충 1권이 끝난다. 물론 이것도 상어공주님 어쩌고 하면서 좀 일본 오컬트스러운 괴담이 나오긴 하는데 그정도야 뭐... 싶고 오히려 제주도 도민의 감상이 좀 궁금해지는 지점이다. 아무래도 육지것이다보니 한국인이어도 제주도에 관해선 외부인인 입장이라서.
개인적으로 마음에 확실하게 껄끄러운 부분은 조연 캐릭터 하나의 취급과 향후 전망이다.
일단 작품은 더블주인공으로 하나는 조선인 무당여캐고 다른 하나는 일본인 괴기소설가인데
일본인을 흥미본위로 남을 자기 잣대로 해석하는 무신경한 인간으로 표현하는건 꽤 괜찮았다.
그 외에도 전문가랑 일자무식이 홈즈와 왓슨처럼 삽질하고 설명해주고 쌩초보가 모르던 분야에 대해 천천히 알아나가는 구조는 왕도전개기도 하니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주인공인 무당 여캐가 조선총독부 소속이다.
조선 총독부 소속 무당.
일단 여기에도 개연성 있는 설명은 있으니까 잠시만 진정해 보자.
무당 캐릭터의 어머니는 일찍 죽고(왜놈이 부모를 죽였다는 서술로 봐선 직간접적 사인이 일제일 가능성 다소 존재한다.) 아버지는 독립운동가라 조선 총독부 건물 폭파라는 김영삼의 선구자적 행보를 보이다 안타깝게도 사망했다.
그렇게 천애고아가 돼서 한 품고 악귀 내림 받은 여캐를 총독부에서 집어다가 조선의 괴이사건이 일어나면 그거 해결하는 비밀요원으로 착취하고 있다는 설정이다.
여기까진 개연성있고 괜찮다. 근데 이 무당에게 지령을 내리는 조선총독부 순사가 또다른 주인공인 일본인 소설가의 친구이기도 한 주요 조역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이 인간의 취급이 개인적으로 몹시 마음에 들지 않는다.
원리원칙을 고수하는 우직하고 멋진 공무원처럼 묘사하고 있어서 내 속이 디비진다 아입니까
원리원칙을 고수하지만 다소 허술한 인간적인 면도 있는 공무원으로 무당여캐의 상사이자 소설가 남캐의 친구로 인간적인 매력이 있는데다 할때는 하는 때때로 간지나는 캐릭터로 빌드업하는게 보이는데 향후 전망같은거 생각하면 나라가 무너지고 사회가 무너지고...
일본인 특유의 각자의 위치에서 자기 역할을 다하는 이바쇼 역할론도 짜증나 죽겠고
개그컷 같은걸로 인간적인 면을 빌드업하는것도 속이 디비진다.
근데 이건 강점기에 알레르기 쇼크반응 일으키는 나의 개인적 입장이긴 하다.
그냥 읽으면서 일본인은 총독부 순사를 저런 식으로 해석하는구나 헤에...호오...흐음... 역시.(뒤끝 개오짐)하게 되는 것이 다랄까.
아무튼 작가가 나름 열심히 공부했고 조선+무속+일제강점기라는 마라불닭고수민초치즈같은 조합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진 식민지에 대해 건조한 시각을 유지하고 있어서 (물론 내가 마음에 죽어라 걸려하는 조연캐와 그 취급 전망에 대한 얘기는 좀 다르지만 사실 나는 제국주의 미화에 대해 일애만 오타쿠는 물론 일반인 기준으로도 좀 예민한 편이다.)
일본인이 다루는 민속학 소재 (그러나 문헌조사와 한국 영화가 창구인) 오컬트만화 라는 색다른 소재에 관심이 있다면 한번 집어들어도 괜찮은 작품인듯 하다. 1권이 정식 번역발매된 지금까지는 아직 괜찮은 느낌.
나는 이렇게 리뷰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최종적으로는 저 총독부 순사 때문에 이 만화에서 떨어져나갈거 같은 예상이 들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