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쇼 로망이 무엇인가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우선 '다이쇼'라는 단어가 무엇인지부터 살펴봐야 한다. 다이쇼라는 단어는 대정(大正)이라는 연호를 일본식 발음으로 표기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 '연호'라는 것은 또 무엇인가? 중국에서 유래한 날짜를 지정하는 기준이다. 이렇게 뜬구름 잡는 이야기를 해서는 이해가 잘 가지 않을 것이다.
중국은 아편전쟁 이전까지만 해도 문화, 과학, GDP 등등을 통틀어 선진 강대국이었다. 지금의 미국이 국제사회에서 맡고있는 선진국, 강대국의 이미지를 떠올리면 된다. 지금 영어는 공용어처럼 사용되고 년도표기를 서기 2022년 AD 2022라고 국제기준을 맞춰 사용하듯이 그때의 국제표준은, 최소한 중국의 조공질서 안에 존재하는 동아시아의 날짜표기 표준은 중국의 연호였다. 이 연호란 세종 25년 (1443년, 한글이 창제된 해) 같은 식으로 왕의 즉위를 기준으로 년도를 세는 단위이다.
간단히 말해 2017년을 2017이라 쓰지 않고 문재인 1년이라고 쓰는 것과 마찬가지 개념이다. 이런 국제 표준을 정할수 있는, 혹은 그 나라의 기준이 곧 국제 표준이 되는 나라란 곧 황제국을 뜻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주를 중시하고 칭제를 하던 고구려, 백제, 신라, 발해, 고려 등은 연호를 사용했고 성리학 기반의 조선에서는 고종이 칭제하며 대한제국을 선언해 독자적 연호를 사용하기 이전까지 명-청의 연호를 사용했다.
그래서 그 연호가 뭐? 싶을 것이다. 아무렇든간에 중국이 포함된 동아시아 세계관 내에서 연호는 독립적인 황제국이 사용할수 있는 날짜표기 표준안이다. 그리고 일본은 이 연호를 명치유신(메이지 유신) 기점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명치유신 이전 연호는? 그런거 없다고 생각해도 된다. 고종이 칭제건원(황제를 칭하고 연호를 정하는 것을 뜻함)을 한게 새로운 의지의 표현이자 제국선언이었던것처럼 일본인들도 칭제건원을 한 것 뿐이다. 그 이전의 연호는 본인들도 그다지 중요하게 다루지 않는다.
이렇게 해서 일왕 즉위를 기준으로 일본의 연호가 나뉜다. 시간순에 따라 순서대로 배치하자면 명치((明治, 메이지. 1868-1912), 대정(大正, 다이쇼. 1912-1926) , 소화(昭和, 쇼와. 1926-1989), 평성(平成, 헤이세이. 1989-2019), 영화(令和, 레이와. 2019-현 일왕 퇴위 혹은 양위시까지) 인 셈이다.
일단 여기서 일차적으로 눈치를 채는 사람이라면 앞으로 구구절절이 길게 쓴 바이트더미를 딱히 읽을 필요가 없다. 잘 가십시오. 살펴 가십시오.
그렇지만 나는 여전히 여기 남아 구구절절하게 이야기를 해야 한다. 위에서 나열한 연호의 타임라인을 그대로 세계사로 옮겨보도록 하자. 청일전쟁이 1894년, 러일전쟁이 1904년이다. 1차 세계대전은 1914-1918년이고 2차 세계대전이 1939-1945년이다. 덤으로 한국전쟁은 1950년이다. 이래도 감이 오지 않는다면 시선을 좀 더 상세하게, 조선으로 옮겨보도록 하자. 고종 재위기간이 1863-1897년이고 을사늑약이 1905년, 일제 강점기가 1910-1945년이므로 광복은 1945년이 되겠다. 참고로 3.1운동은 1919년이다. 자, 다시 한 번. 다이쇼가 언제다? 1912-1926이다. 우리의 제국주의 열강들이 미쳐날뛰는 영광의 시기 되시겠다.
좀 더 알아보기 쉽게 표로 살펴보도록 하자.
일본발 서브컬쳐에서 영국의 빅토리안 에이지에 대한 선망이 유독 강하다는것은 아는 이는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대역전재판의 캐치프레이즈였던 '대제국! 대영제국! 대일본제국! 대역전재판!' <이 카피를 보면 대충 감을 잡을수 있겠다. 이런 빅토리안 에이지에 대한 선망이 국뽕과 섞이며 자국 역사내에서 빅토리안 에이지처럼 미화하고 소비할 수 있는 때가 언제인가를 살피다 가장 재위기간이 짧은 대정 일왕의 즉위시기가 선택되었다.
그 이전까지는 중국 중심의 세계관에서 조공질서에도 끼지 못하는 변방 야만인 913호쯤의 취급을 받던 일본이 아시아를 버리고 유럽의 열강이 될 것이라며 탈아입구를 외치고 제국주의를 표방하며 군대도 늘리고 전쟁도 신나게 이기고 전쟁으로 딴 판돈으로 즐겁게 공장도 돌리고 식민지도 만들고 오등작 에헴에헴 귀족놀이도 하고 영국 왕실도 열심히 따라하던, 아주 즐겁고 호화롭고 영화로운 시기의 표상으로 대정 연호가 찝혀나온 것이다. 요즘도 종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분들이 말하시는 '그래도 박정희때가 살기 좋았어! 크으 강한 가카! 나라 발전! 경제 발전! 그 전에는 자식들아 밥도 제대로 못먹었어! 라떼는 말이야~' 하는 맥락과 동일하다.
일본 서브컬쳐에서 다이쇼 로망을 소비하는 키워드는 크게 두가지가 있다. 정확히는 2.5개라고 해야하지만 사사오입 정신에 의거하여 3개라고 말하기는 좀 그러니까 크게 두가지가 있다고 하자. 개화기와 풍요가 바로 그 두가지이다. 산업혁명+풍요 키워드로 소비하는 빅토리안 에이지나 풍요+예술 키워드의 벨 에포크 같은 제국주의 기간을 미화하며 이상화하는 문화 사조를 우리도 한 번 따라해 보자! 가 다이쇼 로망의 척추다. 뭐 그래봐야 빅토리안이나 벨 에포크나 다이쇼 로망이나 하층계급 착취 및 식민지 수탈로 빤 꿀로 세운 풍요의 제국인건 마찬가지긴 하다. 빅토리안 에이지나 벨 에포크는 요새야 단물 빨만큼 빨았으니 반전으로 풍요에 따르는 명암, 즉 제국주의의 폐해나 산업화의 그늘 등등을 다루는 시점도 종종 등장한다지만 내지인들은 그저 빅토리안 에이지=풍요!!! 빅토리아 여왕!! 해가 지지 않는 제국!!! 멋있어!!! 로만 소비하는 경우가 절대다수다. 그리고 그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캐릭터화'나 '모에화'로 소비할 수 있는 시대를 탐색하기 시작한다. 이때 선택된 기간이 바로 대정이다.
하필이면 왜 대정이었을까? 명치와 소화는 기간이 너무 길었다. 명치에는 명치유신도 있고 신선조도 있고 서남전쟁이니 보신전쟁이니 하는 내전 기간도 존재하기 때문에 제국뽕+양뽕을 채우기에는 미묘하게 어울리지 않는다. 그렇다고 소화를 선택한다? 소화는 본격적으로 전쟁에 미쳐돌아가던 2차대전 시기+패전 이후 시기+한국전쟁 특수로 부활하던 시기+버블시기가 죄다 섞여 있어서 쇼와로망이라고 하며 제국뽕+양뽕을 채울수는 없다. 쇼와에 대한 미화는 근대시기가 아닌 현대 옛날에 대한 향수가 기본이기 때문이다.
결국 시기도 아주 짧은 대정기간이 로망의 기간으로 정해두고 미화하며 소비하기에는 아주 최적인 셈이다. 생각해보도록 하자, 기간도 짧겠다 대정때는 딱히 패배한 전쟁도 없이 아주 잘 나갔겠다 이후에 소화를 거치며 겪은 패전의 쓰라림과 닷씨는, 닷씨는 일어나지 말아야 할 범인류적인 아픔인 핵폭탄의 상처, 그리고 그 모든것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기적적으로 이뤄낸 경제부활이 배경으로 버티고 있는 것이다. 폭락 이전의 고점에서 아 그때 팔아치웠어야 하는데 하고 염불을 외는 것과 마찬가지다. 아주 짧았던 기간 화려하게 번영하고 이후 다가올 불운(전쟁)의 그림자여... 아련아련... 하며 처연놀이하기 아주 딱 좋은 기간이다. 내지인들이 그렇게 환장하는 한때 확 피고 한꺼번에 져버리는 화려한 사꾸라 같은 시대 그 자체란 소리다.
양뽕과 일뽕을 동시에 채울수 있는 빅토리안 에이지 미화 짭인 다이쇼 로망은 대강 이러한 메커니즘을 거쳐 탄생했다. 하지만 모름지기 일본이란 제국주의에 미쳐서 2차 세계대전 추축국까지 해먹은 전쟁범죄국가고 그 때문에 아직도 군대를 못갖고 자기 방어만 할수 있다는 컨셉의 자위대만 있다는 것 때문에 전 일본 총리 아베가 거품을 물며 보통국가론(우리도 군대 갖자! 왜 못갖냐! 갖게 해줘라! 법 고칠거다!)을 내세우다 사이비종교 연루 사실때문에 암살당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멀쩡히 생각하는 뇌를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저런 물건에 대놓고 미화를 처덕처덕 바르며 소비할 수는 없다.
그리고 일본인의 입장에서 도덕적 이유보다 더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을 진짜 이유는 간단하다. '사람은 잘나갈때는 추억팔이를 하지 않는다.' 뒷방에 들어앉아서 내가 그땐 그랬지. 라떼이스홀스 운운하며 공염불을 욀때나 추억팔이를 하는거다. 왕년의 일본은 버블 등등으로 미국의 턱끝까지 추격하는 쾌거를 이뤘기 때문에 '야 우리가 돈도 있고 곤조도 있는데 왜 쪽팔리게 예전 제국주의 전쟁때 일을 신경 쓰냐?' 의 상태였다. 추팔 미화 말고도 할게 많고 팔 게 많고 즐길게 많았다는 소리다. 그래서 이 다이쇼 로망이란 물건도 서브컬쳐 소비 카테고리의 하나로 일단 만들어두기는 했지만 그렇게 많이 쓰지는 않는 컨텐츠 정도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지금은 다이쇼로망에 편입된 수많은 일본풍 하부요소들이 그 이전에는 단순한 일본풍 메이드, 와(和,화)풍 로리타 하는 식으로 불리며 따로따로 떨어져 있었다.
그러나 나라가 무너지고 사회가 무너지고 경제가 땅을 파고 들어가 뗏장을 덮고 눕고 사회가 우경화되고 우민화가 가속되고 오타쿠 컨텐츠가 도덕률을 잃고 폭주하기 시작했다. 컨텐츠의 소모는 심각한데 새로운 뽕을 맞춰줄 뭔가는 나타나지 않는 상황. 온갖 캐릭터 뷔페와 예전에 한번 만들어서 쓰고 버렸던 거지같은 소재까지 바닥을 닥닥 긁어서 끌고와야만 하는 극한 컨텐츠 고갈상태가 와버린 것이다. 거기에 컨텐츠 제작자 및 소비자들에겐 그간 정부가 부지런히 진행해오던 우민화 및 우경화가 아주 훌륭하게 작동했다. 경제 한파를 겪고 혐한이 득세하고 정치인들도 개나발을 부는 마당에 전쟁과 제국주의에 대한 개념 자체가 망가지고 왜곡돼버려 전쟁 혹은 전후세대 창작자와는 다르게 극한까지 우경화된 창작자와 소비자들이 제작 일선에 서게 된 것이다. 이 마당에 토토가 레트로 열풍처럼 다이쇼 로망은 추억팔이 컨텐츠로 '야 우리도 옛날에는 진짜 잘 나갔어! 크- 옛날의 영광 꿀이 달달하다' 하기에는 너무나 좋은 소재였다.
다이쇼 로망의 카테고리 구분은 양뽕+일뽕이라는 교잡종에서 출발했지만 경제가 무너지고 도덕이 해이해질수록 점점 더 제국주의 미화가 비중을 늘려가기 시작한다. 와중에 '다이쇼 로망'이라는 단어 아래에 붙는 범위 역시 점점 넒어지기 시작한다. 사실 다이쇼로망이라면서 팔아먹는 물건중 많은 것들은 그 연대를 세세하게 따지며 들어갔을때 명치나 소화적 물건인것이 대부분이다. 쇼와 모던/쇼와 레트로라는 단어도 있는 모양이지만 다이쇼 로망의 인지도에 눌려서 흡수되다시피 돼버렸다. 일단 카테고리화 혹은 캐릭터화 해서 확립해버리면 묶어서 퉁치고 자기 마음대로 소비하는 일본답게 사소한 일은 신경쓰지 않는다. 한 번 다이쇼로망이라고 이름을 붙였으니 그 깃발 아래 일본식 레트로, 일본식 개화기, 일본식 근대풍이 차례차례 편입되고 아주 오만 잡것이 다 와서 철썩 붙는다.
다이쇼 로망이라는 식품완구를 보면 좀 감이 올 것이다. 이건 그냥 서양 물품 아닌가? 싶을것이다. 이렇듯 양화혼종의 소품, 의상, 건축 등 OO모던으로 불릴만한 것들도 전부 다이쇼 로망의 하부 카테고리에 수용된다. 스테인드 글라스를 넣은 유리 소품, 축음기와 LP판, 서양식 카페에서 파는 샌드와 커피까지도 다이쇼 로망에 포함되는 것이다. 이런식으로 '개화기', '서양 문물과의 혼합' 이라는 키워드가 다이쇼 로망 아래에 편입된다. 쇼와 레트로, 쇼와 모던 등등 명치나 소화의 사조나 물건을 지칭하는 단어들도 이렇게 얼렁뚱땅 다이쇼 로망의 깃발 아래에 서게 된다.
애초 다이쇼 로망의 대표적 키워드인 '리본과 후리소데에 하카마를 입은 여성' 이라는 이미지부터가 명치때의 물건이다. 당시 여학생들이 활동성을 위해 하의로 남성의복인 하카마를 입은 것이 교복화되었고, 그 이미지가 '다이쇼 로망'의 대표격으로 둔갑한 것이다.
여성의 경우 커다란 리본에 화살촉무늬 상의, 그리고 하카마. 남성의 경우는 검은 제복모(교모)에 상의 안쪽에 받쳐입는 셔츠로 대표되는 것이 바로 다이쇼 로망 이미지다.
이런식으로 연원을 따지자면 사실 명치나 소화적 물건인 것들도 쿨하게 대범하게 다이쇼 로망 카테고리에 포함된다. 건축 부문에서는 장짓문 대신 색유리를 끼운 유리창, 혹은 그냥 아예 서양식 석조저택의 입식 가구를 둔 화려한 방 같은 것 역시 다이쇼 로망에 편입된다. 서양식 소품이 가득한 화려한 서양식 입식 방에서 양복을 입은 이들에게 둘러싸여 홍차를 마시는 하카마차림의 소녀 / 예쁜 양산을 들고 화살촉무늬 혹은 세로줄무늬나 바둑판무늬 상의에 하카마를 입은 소녀와 교모를 쓰고 (교복에 망토를 차려입거나) 셔츠를 받쳐입은 남성 등등의 대표적 다이쇼로망 이미지는 이렇게 탄생한다.
그러나 다이쇼는 좋았던 한때가 아니다. '때는 다이쇼, 세상은 태평' 하고 말하듯이 평화와 풍요와 번영과 태평의 시대가 아니다. 일제가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이라는 도박으로 딴 판돈, 즉 돈과 식민지와 그 자원을 바탕으로 더 큰 전쟁-더욱더 크고 영광스러운 전쟁을 찾아다니던 시기다. 일본 내적으로 보아도 위로부터의 갑작스러운 산업화와 도시화, 그리고 도시와 농촌간의 발전 양태차이로 농민이 땅에서 내쫓겨 하루벌어 하루사는 날품팔이가 되거나 광산에서 죽거나 도시에서 굶어죽는 빈부격차의 시기였다. 와중에 윗대가리들은 화족이니 오등작이니 대일본제국 육군과 해군이니 대본영이니 군비증강이니 온갖 난리를 치느라 분주한 때이기도 했다.
조선? 1910년대의 무단통치와 1920년대의 문화통치기에 정통으로 걸쳐있어 1919년의 3.1 운동이 일어나고 그 후 조선인을 다 찍어눌러 죽인 뒤 말뿐인 문화통치로 조선인간의 내분을 조장하는 시기였다. 1923년의 관동 대지진으로 조선인을 비롯한 재일 식민지인들도 떼죽음을 당한 판에 엎친데 덮친 격으로 내부에 쌓인 불만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탔다'며 조선인을 타겟삼아 지나가던 이를 붙들고 '15원 50전'을 말해보라 시킨뒤 발음이 어눌하다 싶으면 우물에 독을 탄 조선인으로 몰아 잡아죽이는 분위기로 미쳐돌아갔던 바로 그 시기다. 아주 훌륭한 제국주의 치하에서의 제노사이드 예시가 아닐 수 없다.
다이쇼 로망의 로망을 구성하는 부귀영화란 집단의 기본 구성원인 일본 국민 착취는 기본으로 깔고 들어가며, 거기에 중국과 조선 및 오만떼만 나라들을 침략하고 식민지화한 일제가 어린아이 입에 들어가는 수저 하나까지 빼앗아와 빨던 착취의 결정체다.
이처럼 단정지어 말하면 누군가는 이렇게 반발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저 레트로 취향일수 있지 않느냐.', '개화기 혹은 근대화시기의 소품과 문물이 취향일수 있다.', '서양과 동양의 문물이 섞이는 지점에 대한 매혹을 너무 사상에 갖다 붙이는것 아니냐', '한국인의 피해의식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일이 그렇게 돌아가 주지는 않는다. 애초에 컨텐츠의 생산자인 일본인부터가 다이쇼로망에 이것저것 가져다붙이고 포함시키고 하면서 다이쇼로망 필수 요소쯤으로 '제국주의 미화'를 팍팍 넣기 때문이다
모르는 분들을 위해 덧붙인다. 이미지의 녹색 혹은 흰색 제복이 무엇이냐 하면 바로 일본군 군복이다.
섬 바깥의 2등신민이 문제가 될법한 부분만 따로 떼어서 억지로 클-린한 부분만 남긴 뒤 개화기 모에일수도 있잖아요! 서양+동양 모에일수도 있잖아요! 이렇게 변명거리까지 다 만들어 떠먹여줘도 일본인들은 수저를 쳐내며 다이쇼 로망에 제국주의 미화를 한 푸대 쏟아부어 왁팍왁팍 비벼먹는다. 아 내지 본토에서는 저렇게 제국주의 미화에 팍팍 무쳐먹는게 예절이고 에티켓이라니까!!
위에서 다이쇼 로망을 소비하는 키워드가 2.5개라고 했던것이 기억날 것이다. 한가지는 개화기, 다른 한가지는 풍요였다. 그리고 숨어있는 남은 0.5가지가 바로 제국주의다.
역사에서 조선을 아예 지워버리고 본다 해도 저때는 일본 제국주의의 황금기 곧 일제가 한창 제국주의 뽕에 차서 중국을 털고 러시아에 쿰척대며 오만 국가에 난장을 치고 뻗대며 윽박지르던 시기다. 그리고 일본인들은 저렇게 이것저것 잡아먹고 큰 다이쇼 로망의 중요 키워드에 쿨하게 제국주의 미화를 포함시켜버린다.
고기굽는 척하면서 '우리는 당시의 통사적 시대사가 아니라 미시사적인 미학, 그시대의 레트로만 감성으로 향유하는거니까요!' 하고 빠져나갈 생각도 하지 않는다. 애초에 빠져나가거나 변명해야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우리 잘나가던 때를 회고하는건데 그게 뭐? 우리 군인과 군대가 어디가 어때서? 다이쇼 일왕도 쇼와 일왕도 제국주의 지도자가 아니야!!! 를 외치며 대놓고 '세상은 평화롭고 나라는 번영하며 문명은 개화되고 있다. 학교에서 공부하는 청년들은 이렇게 세계 만방에 빛날 황국의 국체를 짊어질 동량들이다. 또한 우리의 튼튼하고 용맹한 군인들은 용감한 정신으로 국체를 수호하며 그 어떤 전쟁에도 지지 않는다! 제국민의 평화와 안전은 용감무쌍한 일본 군인들의 손에 맡겨졌으니 걱정할 것 없다!'라는 프로파간다까지 팍팍 쳐서 팔아먹고 있다. 제아무리 '개화기의 양화혼종 복장과 조합이 좋을 뿐' 같은 핑계를 만들어줘도 창작자 측에서 그 핑계를 뻥 걷어차고 제국주의 뽕 강한 나라 뽕 잘나가던 우리 뽕을 크으으으 한번 잡솨봐 하며 팔아먹고 있는데 만들어준 그 핑계가 다 무슨 소용이겠는가.
일본인들이 이것저것그것까지도 다이쇼로망에 쓸어담고 쭙쭙 빨아댄 결과 단순한 양화혼종 모에에 그치지 않고 군복모에 순사복 모에 전쟁미화 소년병미화 전쟁범죄 미화를 세트메뉴로 팔아제끼고 있는데 아 어쩌란 말이냐 트위스트 추면서.... 다이쇼 로망은 이렇게 꼭 풍요 번영 서양선망에서 그치질 않고 일본군 모에! 전쟁모에! 를 외치며 제국주의 미화를 하는 전범모드로 풀악셀을 밟다가 갑자기 그 와중에도 자기들은 평화를 사랑한다며 느닷없는 평화주의자 어필을 하는데까지 이르른다. 전쟁에 열광하면서 동시에 평화주의자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들은 육군 멋져! 해군 멋져! 장교 최고! 군대 만세!라는 코드와 세계는 태평하고 열국은 평화롭고 군인은 나라를 지키지만 우리는 평화를 사랑해서 전쟁을 하지 않는 국가라는 의문의 평화주의 코드, 그리고 이 모든게 다이쇼 시대의 복고다 일본제국의 부귀영화 멋져 멋져! 를 한데 모아 모두 쓰까놓은 후 양껏 소비하고 팔아제끼는 동시에 이걸 전통 문화 컨텐츠로 홍보한다. 저 혹시 자기모순이나 자가당착이라는 단어 아세요?
당신이 한국에서 일본 만화/애니메이션을 파는 오타쿠라면 '전쟁 미화'나 '제국주의'라는 단어보다는 오히려 '우익'이라는 단어로 더 익숙하게 접했을 보컬로이드 천본앵 역시 다이쇼 로망에 들어가며 제국주의와 군국주의 미화를 빼지 않고 넣어준다.
아래는 천본앵의 가사이다.
大胆不敵にハイカラ革命 磊々落々反戦国家
대담무쌍하게 하이칼라 혁명 뇌뢰낙락한 반전국가
日の丸印の二輪車転がし 悪霊退散 ICBM
히노마루 무늬(일장기 무늬) 이륜차 타고 악령퇴산 ICBM(대륙간 탄도유도탄)
百戦錬磨の見た目は将校 いったりきたりの花魁道中
백전연마의 모습은 장교 바쁘게 움직이는 오이란(유곽에서 가장 비싼 창녀)행차
군 장교를 통한 전쟁 및 제국주의 미화와 평화를 사랑하는 반전국가라는 말이 동시에 나온다. 반전국가인데 ICBM을 소지하고 있어? 대체 반전국가인데 장교가 백전연마할 전장은 그럼 대체 어디서 튀어나오는 걸까. 연말 홍백전? 히노마루 무늬와 욱일기가 너무나도 당연하게 동일시되고 있는건 지적할 마음도 들지 않는다. 이들이 찬양하고 있는 것이 정말 개화기 특유의 문물과 그들의 전통문화인가? 뭐 제국주의를 전통문화로 체화하고 있어 그렇다고 하면 할 말이 없어지긴 한다.
천본앵은 우익인가? 우익이 아닐수 있다. 정치적 스탠스를 나타내는 우익/우파라는 단어가 창작자에게는 해당되지 않을수도 있는것이다. 하지만 가까이 들여다보자. 제국주의 미화 혹은 전쟁 미화가 들어가 있는가? 답은 그렇다이다.
일본인들은 개화기와 근대의 분위기와 그 미학적 요소만 구분할 능력을 잃었으며 애시당초 그럴 의지조차 없다. 그런걸 하나하나 구분해서 제발 우익과 상관없어줬으면, 제발 제국주의 미화좀 그만 했으면, 제발 전쟁찬양좀 그만둬줬으면 하고 간절히 바라는건 내지 바깥 2등 황국신민들의 힘과 꾸망일 뿐이다.
이렇게 제국주의 미화가 필수요소로 편입되면서 일본군 장교 역시 다이쇼 로망의 주요 컨텐츠중 하나로 자리잡는다. 다이쇼 로망 역시 단순한 동양과 서양의 만남, 개화기의 묘한 분위기, 풍요로웠던 시절에 대한 향수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제국주의를 선망하고 전쟁을 미화한다. 제국주의의 만행과 침략은 어느것 하나 반성하지 않은채 자신들이 보기에 온갖 반짝이는 좋은 것들은 다 가져다 붙여서 미화하고 선망하는 것이다.
나는 제국주의가 정말로 싫은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이쇼 로망도 싫어하며, 다이쇼 로망이 유행하고 국내에서는 이를 따라 '경성로망'이니 어쩌니 하는 말도 안되는 조작형 유행을 띄워 돈 울궈먹으려는 행태도 싫다. 애시당초 핵폐기물의 짭의 짭인데 그걸 좋다고 주워먹고 싶은가? 빅토리안 에이지 미화도 싫어서 못견디는 사람이 그 짝퉁인 다이쇼 로망의 열화카피인 경성로망을 아 그렇구나 하고 좋아할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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